안양(安養) 스토리

배경 < 만안교의 밤 >, 안양천 사진공모전 대상, 2019. 배경 < 나무 위의 선으로 된 집 >, 아콘치 스튜디오(비토 아콘치), 2005. 배경 < 지상의 낙원 >, 문주, 2019. 배경 < 너의 거실 >, 천대광, 2019. 배경 안양 파빌리온 전경몰
역사
1872년에 제작한 시흥현지도 - 안양권

안양의 역사는 문헌자료와 발굴자료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
1989년 평촌신도시 문화유적 조사 때에 발굴된 청동기시대 고인돌, 백제시대 집자리와 관양동 청동기유적에서 발굴된 집자리 등을 통해, 선사시대와 삼국시대부터 안양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안양은 삼한 중에 마한의 범위에 속해 있다가, 백제 건국 이후에 백제의 영토로 포함되었고, 고구려 장수왕(394-491) 때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다.
신라 진흥왕(540-578) 때 신라가 한강유역을 차지하면서 안양도 신라의 땅에 속하게 되었다.
삼국시대 안양은 지금의 경기 과천, 서울 금천 등에 해당되는 율목군에 속해 있었다.
안양 석수동에는 통일신라 때인 826~827년에 제작된 중초사지 당간지주(보물 제4호)가 있는데, 언제, 어디서, 누가 만들었는지를 기록한 명문이 남아있다.
제작 시기와 주체를 알 수 있는 국내 유일의 문화재이다.
당간지주는 사찰의 입구에 위치하며, 깃발인 ‘당’을 거는 기둥인 ‘간’을 지탱하는 돌기둥을 말한다. 당간지주 주변의 중초사는 고려시대 이후 ‘안양사’로 바뀌었으며, 이 절의 이름에서 현재 안양시의 명칭이 유래하였다.

지명유래

안양(安養)이란 명칭은 고려 태조 왕건에 의해 창건된 안양사(安養寺)에서 유래되었다. 신라 효공왕 4년(900)에 궁예의 후예인 왕건이 금주(시흥)와 과주(과천) 등의 지역을 징벌하기 위해 삼성산을 지나게 되었다. 이때 산꼭대기의 구름이 5가지 빛으로 채색을 이룬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살피게 했다.

구름 밑에서 능정(能正)이란 노스님을 만났는데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왕건의 뜻과 같으므로 이곳(만안구 석수1동 산 2번지 일대)에 안양사를 창건하게 되었다.
이 안양사로 인해 안양이란 명칭이 탄생하였다. 조선 시대에 정조대왕께서 부친 사도세자의 능행을 위해 가설한 만안교의 안(安)자와 함께, 양(養)자는 후세사람에게 인륜의
근본인 효의 뜻을 살리기 위해 쓰인 것으로 짐작한다. 또한 1941년 시흥군 서이면이 안양면으로 개칭되며 쓰였는데 안양이란 불교에서 마음을 편하게 하고 몸을 쉬게 하는
극락정토의 세계로 모든 일이 원만구복하여 즐거움만 있고 괴로움은 없는 자유롭고 아늑한 이상향이다.
2010년에는 중초사지 당간지주가 세워져 있는 구 유유부지를 발굴 도중 안양사(安養寺) 명문 기와가 발굴되어 이곳이 통일신라 시대 중초사에서 고려 시대에 안양사가
있었음을 확인 시켜 주었다. 또한 우리 시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로 시의 지명유래 근원지임을 추정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어제와 오늘

고려 태조 왕건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안양사'에서 유래한 '안양(安養)'은 불교에서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자유로운 극락정토의 세계로 모든 일이 원만하여 즐거움만 남고 괴로움은 없는 유토피아의 세계를 뜻한다. 행정구역의 명칭으로 '안양'이란 이름이 존재감을 드러낸 건 1941년. 경기도 시흥군 서이면에 속해 있던 안양은 1941년 '안양면'이 되었고, 1973년에 이르러 '안양시'로 승격되었다. 안양이라는 뜻깊은 이름을 선사해준 안양사는 16세기에 들어 사라지고 마는데 6.25 한국전쟁 이후 삼성산 안쪽에 새로운 터를 잡아 다시 창건되었다.
원래 안양사가 있던 자리에는 지금 안양박물관과 김중업건축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산과 하천이 잘 어우러진 안양은 한반도에 인류가 살기 시작한 선사시대부터 주거생활이 이루어진 곳이기도 하다. 1989년 1기 신도시인 평촌 개발 당시 발굴된 석기시대의 각종 유물과 청동기시대의 고인돌이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평촌 신도시가 생기기 전까지 안양은 흰 연기를 뿜는 공장이 많으면서도 포도와 딸기 농사가 유명한 지역이었다. 사통팔달의 교통에 안양천을 비롯한 물 맑은 하천이 골고루 흐르는 땅이었기 때문이다. 삼성천을 끼고 있는 안양유원지 (지금의 안양예술공원)은 여름이면 하루 수만 명의 사람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피서철에는 유원지 입구에 기차 임시 승강장이 설치됐을 정도였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기차를 타고 떠난 여행에서 물놀이하며 포도를 먹는 것은 당시 최고의 휴가였다.
수도권 남부를 대표하는 산업도시이자 교육도시였던 안양은 1990년대 들어 공장이 이전하고 평촌 신도시가 개발되며 큰 변화를 겪었다. 옛날 굴뚝이 있던 공장 자리에는 IT벤쳐기업이 대거 들어섰고 무분별한 개발로 몸살을 앓았던 안양 유원지는 2005년 개최한 1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 사업을 통해 자연과 사람과 예술이 어우러진 예술공원으로 탈바꿈했다. 21세기 안양은 예술도시와 첨단산업 도시로 여전히 거듭나는 중이다.

망해암에서 바라본 안양시

망해암에서 바라본 안양시

1960년대 안양유원지 천연수 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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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초사지 당간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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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촌신도시의 랜드마크 아크로타워와 시민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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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19.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