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천의 위기
1970년 하천의 근대화 폐해
1970년대는 우리나라의 고도성장기로 토지 이용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급속한 산업화, 도시화에 따라 물이 풍부한 안양천변에 대규모 공단이 조성되었고, 안양천으로 유입된 공장 폐수와 생활하수로 인해 안양천은 몸살을 앓아야 했습니다.
또한, 대규모 공단 조성에 따른 인구 증가로 수도권에 사람들이 집중되면서 교통량이 증가하게 되고, 이에 주차난 해소를 위해 도로와 주차장을 건설하는 등 인간 편의만을 고려한 사고로 하천을 개발하고 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개발 중심 정책으로 환경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일부 하천이 복개되어 도로나 주차장으로 이용되었고, 공장폐수는 하천에 직접 배출되었으며, 생활하수 역시 정화없이 배출되었습니다.
이렇게 각종 오염물질의 유입으로 안양천은 서서히 병들고 하천 생태계는 단절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천 생물의 일부는 한강을 따라 다른 곳으로 이동했고, 계곡으로 올라간 다른 일부는 안양천으로 내려올 수 없었습니다. 안양천은 물고기, 새, 곤충이 살 수 없는 생명이 사라진 하천이 되었습니다.
1977년 안양천 대홍수
안양천은 우리나라에서 홍수가 빈번한 지역으로 유명한데 그 중 대표적인 홍수로는 1977년 대홍수로 재산 피해가 당시 물가 기준으로 약 382억원에 달했습니다.
강수량
- 일 최대 1977.7.8 06:00 ∼ 1977.7.9 06:00 - 454.5mm/day (1000년 빈도 강우)
- 시간 최대 1977.7.8 20:00 ∼ 21:00 - 99.5mm/hr
피해상황
- 인명피해 : 총계 677명, 사망 208명, 실종 49명, 부상 420명
- 재산피해 : 382억 (1977년 물가 기준)
피해원인
- 1일 강우량 454.5mm의 집중호우 발생.
- 안양천 중상류 충훈부 지역과 안양철교 상류구간의 하폭이 협소하여 홍수 소통에 지장을 초래. 지천의 저지대로 범람.
- 상류지역은 급경사 산지로 둘러 쌓여 있어 유수가 일시에 쇄도하여 저지대 침수.
- 급경사 산지로 식생 상태가 불량, 보수능력이 없고 산사태와 토사류의 발생으로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 발생
- 수해 후 치수사업 : 하천정비 기본계획 수립 하천정비 : 하천폭 확장, 호안정비 등
- 하수도 정비 기본계획 수립 하수도정비 : 하수도 개량사업
- 저지대 상습 침수지역 배수 펌프장 설치
- 안양2동 주택가 침수
- 안양3동 율곡마을 산사태
- 비산공원 수해현장
- 안양대교 침하현장
- 77년 교량 침하
- 관양동 하천변 수해복구현장
홍수해예방을 위한 시민 실천사항
- 우수의 배수경로 등을 파악하여 보고 주변의 빗물받이는 수시 점검한다.
- 홍수위보다 높은 지역인지 저지대인지 파악하여 유사시 대비한다.
- 축대붕괴, 산사태 발생 우려 지역은 해빙기, 우기 전에 점검 보수한다.
- 저지대의 경우 침수시 대피지역과 경로 등을 파악하여 둔다.
- 삽, 마대 등 수방도구를 준비하여 둔다.
1980년대의 안양천
안양천은 195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맑은 물이 굽이쳐 흐르며 여울과 소가 형성되어 잠자리와 개구리, 물고기가 노닐고 하얀 모래밭에서 어린이들이 모래성을 쌓고 멱을 감던 정다운 하천이었으나 60년대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한 생활하수 및 공장폐수 등 오염물질의 유입으로 안양천은 서서히 병들어 80년대에는 어떠한 생물도 살 수 없는 하천으로 변하였습니다.
1984년 BOD 193.3mg/L의 심각한 오염으로 생명이 살 수 없을 정도로 생태계가 파괴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