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안구소개
('만·문·누리' 소개)
만안구
조선 정조대왕이 1795년에 만민의 평안을 기원하는 뜻으로 삼성천에 다리를 축조하여 만안교라 칭하였으며, 이 전례를 따라 1989년 5월 1일 안양시 지명위원회에서 구의 명칭을 만안이라 명명하였다.
- 1989년 5월 1일 만안출장소 설치
- 1992년 10월 1일 안양시(安養市) 구제 시행으로 일반 구로서 신설되었다.
만안교(경기도 유형문화유산), 소재지 : 만안구 석수동 679
하위 행정구역
행정동명 | 법정동명 |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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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1동 (Anyang1-dong) | 안양동(安養洞) |
신라 효공왕 4년(900년)에 궁예의 부하였던 왕건이 금주(지금의 시흥)와 과주(과천) 지역을 정벌하기 위해 나섰다. 마침 삼성산을 지나는데, 산꼭대기에 구름이 오색으로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겨 왕건은 사람을 시켜 알아보게 하였다. 구름 아래서 능정이라는 늙은 스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스님의 뜻이 왕건의 뜻과 같아 이곳에 안양사를 세우게 되었다. 여기에서 안양이란 뜻은 모든 일이 원만하고 만족스러우며 즐거움만 있고 괴로움이 없는 이상향(상상 속의 낙원)을 말한다. 조선 시대에는 과천군 하서면 안양리·발사리 지역이었다. |
안양2동 (Anyang2-dong) | ||
안양3동 (Anyang3-dong) | ||
안양4동 (Anyang4-dong) | ||
안양5동 (Anyang5-dong) | ||
안양6동 (Anyang6-dong) | ||
안양7동 (Anyang7-dong) | ||
안양8동 (Anyang8-dong) | ||
안양9동 (Anyang9-dong) | ||
석수1동 (Seoksu1-dong) | 석수동(石水洞) | 조선 시대에는 시흥군 군내면 안양리였다. 일제강점기 1914년 시흥군동면 안양리로 행정구역이 바뀌었고, 1963년 1월 1일 시흥군 안양읍에 편입되면서 신안양리(新安養里)로 바뀌었다. |
석수2동 (Seoksu2-dong) | ||
충훈동 (Chunghun-dong) | ||
박달1동 (Bakdal1-dong) | 박달동(博達洞) | 조선 전기에는 금천현 현내면 박달리였다가 말기에는 시흥군 군내면 박달리였다. 1914년 시흥군 서면 박달리로 행정구역이 바뀌었고, 1963년 1월 1일 시흥군 안양읍에 편입되었다. |
박달2동 (Bakdal2-dong) |
안양 4경(망해암)에서 바라본 만안구 전경